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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세종대 대양홀에 있었던 취업 페스티발을 가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취업은 결국 자신을 selling 하는 겁니다.

나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기 싫다.

일단 난 물건이 아니고!!!


물론 자신의 필요성을 증명해야된다는 점에서는 마케팅과 비슷하다고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양산되는 프로덕트들과는 달리 우리는 양산되지 않았다. 살아온 과정 그 발자취 그리고 경험 인간 관계 그 모든게 모두가 다르다.

심지어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생각하는 관점도 제 각각이다. 진영 논리가 끼어들 틈도 없다. 단지 우리는 사회인이고 합의할 뿐이다.


오늘 얘기해보고 싶은건 자소서의 순기능이다.

자소서에는 정말 많은 다양한 질문이 있다. 장점 단점부터 시작해서 성취한 일, 힘들었던 일, 직무 역량 등

이런 문답을 보면 물론 기술적으로 작성할 필요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경험과 타인과의 관계 등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오늘은 친구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자네는 자네와 정말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몇이나 있나?”

어 

어 그러니까 저는…

그래서 친하다는게 정량적인 지표인건가요? 더 구체적인 질문을 주시죠


사실 친하다의 기준부터 모호하다. 그래서 내가 내 기준을 세워서 대답을 해보도록 하겠다.

가설을 하나 두자.

어느 영화 소개 영상인지, 어느 책 소개인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흥미로웠던 시나리오라서 차용한다.

버튼이 하나있다. 이 버튼을 나를 아는 친구들에게 주자.

그리고 그 친구들에게 소개한다.

이 버튼을 누르면, “서영덕” 이라는 사람은 소멸하고 그 관련된 기억은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다. 물론 누른 사람의 죄책감도 포함해서

누른 사람은 평생 쓰지못할 부를 얻을 수 있고 평생 얻지못할 명예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

물론 그 근거도 모두 자신의 성취로 적절히 포장된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예상가능한 몇 가지 갈래는 다음과 같다.


1. 버튼을 가져온 자를 목숨을 걸고 죽여서 버튼을 빼앗을 사람

2. 버튼을 가져온 자를 폭행하거나 추격하여 버튼을 빼앗을 시도를 하고 나에게 알릴 사람 

3. 버튼을 가져온 자를 신고하고 나에게 알릴 사람

4. 버튼을 누르지 않을 사람

5. 고민끝에 버튼을 누를 사람

6. 고민없이 쉽게 버튼을 누를 사람


버튼은 어쩌면 허구일지 모른다. 누가 이런걸 믿겠나

그러나 버튼이 가지는 의미는 그 이상이다. “누가 이런걸 믿겠나”는 죄책감을 덜기위한 하나의 생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1번은 친구가 아닐거다. 내 생각엔 있다면 가족이다.

2~4번에 해당되는 친구는 2, 3, 4번에 상관없이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차이가 있어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제 고민의 깊이는 같다.

5~6번은 반론의 여지가 없이 친구가 아니다. 어쩌면 적이될 수 있다. 협상의 대상이다.



말하고자 하는 본론은 사실 이게 아니다.

나를 살리고 죽일 버튼을 누르는 사람의 수보다 중요한게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한 인간의 관계 실타래는 단방향 양방향을 넘어 세상 복잡하게 얽혀있다.

친구가 나의 소멸을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결국 이 세상을 바라보는 주체, 친함을 판단하는 주체는 ‘나’다.


사례를 들어보자.

가정 1. 별로 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버튼 가져온자를 멱살잡아 끌고올 수 있다.

가정 2.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버튼을 눌렀다. 

이 두 가정에서 ‘친하지 않다, 친하다고 생각했다’를 상정하는 주체는 결국 ‘나’이며

나의 친구에 대한 신의 정도에 따라서 적절한 크기의 감동 또는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입각해서 다시 저 버튼에 대해 ‘나'의 관점에서 친한 친구가 얼마냐 있냐는 얘기를 해보자면 이럴것 같다.


나는 버튼을 누르면 내가 소멸된다는걸 알면서도 누르는 사람이 없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적어도 그 몇 사람은 절대 누르지 않았으면 좋겠어.

만약에 그 친구가 버튼을 누른다면 난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끼기보단 그냥 죽는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난 정말 최근까지 진실되게 친한친구가 여럿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다시 또 한번 친구 관계에 대단히 회의를 느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다.

부질없다는 생각도 여러번, 어차피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 결혼하면 버려질 관계인가

결론은 아니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은 당신의 진정한 친구가 아니었던거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최근에 친구를 사귀는데 꽤나 방어적이 된 것 같다.

그나마 있는 친구에게 더욱더 잘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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